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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 아카이빙 프로젝트

도봉 아키비스트가 기록하는 도봉의 인물과 공간

지역문화 아카이빙은 도봉이 품은 다양한 문화의 가능성과 지역 자원을 주민이 직접 탐색,
기록하고 구성하여 중요한 홍보 자산으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우이성당 고양이와 동네 사람들 (1) -고양이 엄마, 이도미

이진희 |2020-11-16 | 조회 607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골목에는 많은 종류의 꽃과 풀, 작은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산다. 엄연히 자기 몫을 다하며 살아내고 있음에도 눈에 잘 띄지 않았던 존재들. 길에서 생활하는 고양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도미씨는 쌍문동 우이성당 근처의 이름 없는 고양이 활동가이다.외국인 배우자와 함께 2003년부터 17년째 같은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키며 고달픈 길고양이들의 식사와 건강관리, 처우개선을 도맡아왔다. 사람을 보면 후다닥 도망가기 바쁘고 낯가림이 심한 고양이라 할지라도 그녀 앞에선 순둥이가 되어 편안한 눈빛으로 ‘고르릉 고르릉’ 소리를 낸다. 깊어가는 가을, 도미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남을 요청했다. 

  “만약 돌봄을 세밀히 계획하고 했더라면 아마 시작도 못 했을 거예요. 우연한 기회에 우리 고양이들을 만나게 되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니 조금만 더 해보자 한 게 어쩌다 보니 벌써 17년 세월이 되었네요.” 
 
  도미씨는 현재 실내에서 15마리의 고양이와 생활하고 있으며 근처 고양이 50여 마리의 식사와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2003년 새끼고양이 3마리를 구조한 이래로, 수많은 우이성당 근처 고양이들이 그녀의 손길을 스쳐 갔다. 일부는 같은 영역에 남았고, 일부는 다른 구역으로, 또 다른 일부는 안타깝게도 길 위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Q: 고양이들을 돌보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2003년에 고양이 울음소리로 인해 동네에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어요. 밤새 고양이 울음소리로 짜증이 났던 남자가 큰 망치를 들고 작은 고양이 세 마리를 위협하면서 소란을 피웠어요. 그때는 동네 분들도 지금보다 고양이에 대한 호감과 이해가 부족한 시절이었죠. 저 역시 고양이에 대해 잘 몰랐고 키워 본 경험도 없었지만, 고민할 겨를 없이 이 작은 생명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고 안아 들어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어요. 마치 운명처럼요.



  17년 땀의 노고. 비가 오는 궂은날도, 혹한과 혹서에도 자신이 찾아가지 않으면 쫄쫄 굶을 눈빛들이 눈에 밟혀 2003년 이후 단 한 번도 저녁 약속을 잡아본 적 없다 했다. 일 년에 고작 한 번 있는 여름휴가조차도 남편과는 시기가 겹치지 않게 각기 따로 다녀왔다. 
  실로 긴 시간의 나눔과 돌봄. 평소 길고양이에 대한 호감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결코 쉽게 해 낼 수 없는 힘든 일이다. 도미씨는 동물병원에서 만나게 되는 다른 캣 맘들의 헌신에 비하면 자신의 활동은 너무 소소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낮추었다. 

  Q: 활동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A: 초기에는 아무래도 동네 분들 중에 고양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분들이 있어서 제가 밥을 줄 때 저에게 언성을 높이는 일이 종종 있었어요. 한 번은 본인의 노후화된 옥상 시설물이 다 내려앉은 게 전부 고양이 탓이고 밥 주는 제 탓이라며 몰아세우기도 했었고요. 사실 고양이가 얼마나 사뿐사뿐 다니는데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요즘은 오히려 반갑게 웃으며 좋은 일 한다고 인사해 주시고, 다른 동네로 이사 가서도 골목 고양이들 생각난다고 연락하시기도 하더라고요. 길고양이가 불청객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다행이에요. 



  곧 다가올 매서운 추위가 떠올라 나는 도미씨에게 겨울에 활동하기 특히 힘들지는 않은지 물었다. 이에 그녀는 오히려 골목길이 한적해 눈에 띄지 않게 밥을 주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사료를 주는 장소가 본인 집 앞이 아니거나 공동주택의 이웃들이 동의한 급여가 아닐 경우 보다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이웃들과 갈등의 소재가 될 수 있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최대한 밥을 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지속적으로 길고양이에게 급여를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고양이의 안전과 사람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방법, 도미씨 부부는 그 합의점을 찾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노력했을 것이다. 

  도미씨의 적극적인 고양이 돌봄 덕에 우이성당 골목을 지나는 마을 사람들은 이웃 간 더욱 가까워졌다. 고양이들이 나른한 기지개를 켜는 오후, 하굣길의 아이들은 “이 고양이 이름이 뭐예요?” ,“저 한번 만져 봐도 될까요?” 하며 어른들에게 말을 걸어온다. 
  하나 둘 길고양이 입양을 하게 된 가정도 늘어났으며, 입양할 여건은 안 되지만 일부러 고양이가 보고 싶어서 집까지 더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길로 돌아가는 주민들도 있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도 고양이에게 주고 싶다며 간식과 장난감을 사 들고 찾아오는 앳된 학생들도 있었다. 

  누군가 고양이가 자유로이 활보하는 동네는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쌍문동을 전국에 알린 《응답하라 1988》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고양이로 연결된 우리 골목 사람들은 따스하고 정감이 넘쳤다. 물론 한 존재에 대해 ‘좋아한다’와 ‘그렇지 않다’는 개인의 몫이지만, 적어도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해서 길 위의 생명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무심히 골목을 지나갈 뿐이었다. 



  이건 결코 저절로 주어진 따스한 풍경이 아니었다. 십 수년간 이러한 공존을 위해 도미씨 부부는 큰 노력과 헌신을 해왔다. 수십 마리의 고양이에게 사비를 털어 마련한 사료로 하루 최소 한 끼의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는 것. 눈을 맞추고 인사하고 건강을 살뜰히 살피는 것.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게 방법을 마련해주는 것.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를 진행하거나 안내하고 고양이 전용 상비약을 공수해 필요한 개체에 급여하는 것. 그리고 지역 동물병원, 구청 담당자와 연계해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 이 모두가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성사될 수 없는, ‘시간’과 ‘비용’ ‘정성’ 삼박자가 다 어우러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 활동하면서 사실 제가 준 것보다는 고양이들로 인해 저희가 받은 치유의 힘이 더 큰 것 같아요. 아직도 고양이가 못마땅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잠시 잠깐 내 담장을 넘어서 우리 공간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고양이는 자신을 반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분명한 선을 지키는 영리한 동물입니다. 조금만 인내심을 가져주시면 밥만 먹고 원래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고 절대 머물러 피해 주는 일이 없을 거예요. 곁을 내주시기가 어렵다면 그저 모르는 척, 고양이가 머물러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아주 작은 공간과 시간을 허락해주시는 건 어떠실까요? 사람과 고양이, 우리 모두 다 같이 어쩌다 태어나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니까요.”

<기록 이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