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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 아카이빙 프로젝트

도봉 아키비스트가 기록하는 도봉의 인물과 공간

지역문화 아카이빙은 도봉이 품은 다양한 문화의 가능성과 지역 자원을 주민이 직접 탐색,
기록하고 구성하여 중요한 홍보 자산으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도봉역사문화길 (3) -천년 고찰길을 따라가는 도봉산행

송주영 |2020-12-09 | 조회 643

 

  도봉(道峰)이라는 명칭은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도선국사가 ‘도를 닦는 곳의 봉우리’라는 뜻을 붙여 지었다고 합니다. 이름이 가진 뜻처럼 크고 넓은 산세를 가진 도봉산 곳곳엔 수양을 위한 사찰과 암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인도의 옛 이름인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어진 ‘천축사’와 그 부속 암자를 탐방하려 합니다.

  도봉역사문화길 중 하나인 천년 고찰 길을 다양하고 여유롭게 탐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바위 밑에 기묘하게 자리한 불자들의 참선 도량인 만월암 방향의 길과, 옛 선인의 향기를 가득 품은 천년고찰 천축사 방향의 길입니다. 천축사 길에서는 그의 부속암자인 ‘석굴암’과, 고려 초에 창건된 ‘도봉사’를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사찰과 암자를 볼 수 있는 이번 탐방길에서는 사찰의 이곳저곳을 천천히 둘러보려 합니다. 가을의 절정, 단풍엔딩을 맞이하는 도봉산에서 비움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아보려 길을 나섭니다. 


  아침 해가 따뜻해지기 시작한 오전 10시, 141번 간선버스의 종점에 내려 도봉산 입구에 들어섭니다. 모든 계절이 아름답지만, 계절을 달리하며 천의 얼굴을 자랑하는 도봉산의 백미는 단연 늦가을입니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갈 때마다 길가의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은 듣기 좋은 소리를 냅니다. 곧 만나게 될 사찰의 편안함과 어울리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도봉산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천축사 방향으로 약 1.6km 정도를 오르면 등산객들이 따뜻한 커피 한잔을 즐길 수 있는 도봉대피소가 나타납니다. 이곳에서 왼쪽의 천축사 방향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도봉대피소를 기준으로 오른쪽 길로 오른다면 지난 산행에 가보았던 만월암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면 호젓한 등산로가 나옵니다. 계곡의 물소리는 잦아들고, 고요한 주변의 공기가 머리를 맑게 만들어주는 듯 합니다. 마치 천연 공기청정기를 옆에 둔 느낌입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골짜기에는 올여름 태풍으로 인해 쓰러진 나무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그마저도 톰 소여의 놀이터처럼 보이는 이유는 신선한 공기를 마셔 풍성해진 상상력 때문일까요? 



■ 엄격한 수행의 공간 ‘무문관(無門關)’이 있는 사찰 ‘천축사’ 

  맑은 공기에 취해 10여 분 정도 산길을 오르면 천축사의 ‘일주문’과 사찰로 들어서는 돌계단을 볼 수 있습니다. 선명한 단청의 색상과 깨끗한 바닥이 등산객들을 반겨주는 것 같습니다. 굽이져있는 돌계단을 다 오르면 발치에 각각 이름을 두고 있는 수많은 불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한기가 서리기 시작한 공기를 맞으며 단풍을 한 번, 불상을 한 번 바라봅니다. 여러 불상 속에서 우리네의 삶의 모습이 보이는 듯도 합니다.



  불상에서 왼쪽으로 돌면 드디어 천축사의 전경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깎아지른 듯한 만장봉을 배경으로 소나무, 단풍나무, 유목 등이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어 마치 닭이 계란을 품은 듯한 포근한 정경을 연출합니다. 계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천축사의 자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풍광 좋은 기도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한참 풍경에 넋 놓고 보다가 돌아서면 왼쪽으로 삼층석탑이 나타납니다. 석탑 둘레에는 사람들의 소원과 바람을 담은 황금 나뭇잎이 줄줄이 달려 있습니다. 다들 무엇을 빌고 가는 걸까요? 몇몇 소원을 읽어보니 생각보다 작고 소박한 글귀에 마음이 따뜻해져서 이 정도 소원이면 들어줄 수 있겠다 싶어집니다. 


  대웅전 입구를 지나 마당에 들어서니 사찰에서 생활하고 있는 견공 두 마리가 반갑게 꼬리를 흔듭니다. 산사의 견공들은 신기하게 늦가을을 담아둔 것처럼 눈빛도 고요함을 품고 있습니다.

  천축사의 대웅전은 2004년 주지 현공 스님이 다시 지었습니다. 현재 2층은 대웅전, 1층은 종무소(절의 사무소)와 요사(신도들이 거처하는 집), 신도 휴게실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대웅전의 오른쪽 길을 따라 내려가면 천축사에서 눈여겨볼 건물인 ‘무문관(無門關)’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무문관은 약 60여 년 전에 세운 참선수행도량입니다. 면벽수행(面壁修行)을 위한 수행도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면벽수행(面壁修行)은 부처의 설산 6년 고행을 본받은 수행방법입니다. 벽을 마주 대하고 좌선하며, 수행도량에 한 번 들어가면 4년 또는 6년 동안은 바깥출입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수행 중 먹는 음식도 창구를 통하여 들여보내는 등 수행의 규범이 매우 엄격합니다. 현대의 고승 중에 이 무문관에서 수행한 이들이 많아 한국 불교계에서 무문관 수행을 최고로 알아주는데, 현재는 그 맥이 끊어져 수행하는 이들이 없다고 합니다.
  무문관은 현재 템플스테이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장소이기도 해 템플스테이에 직접 참여해보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그저 무문관 아래의 경치만 둘러봅니다. 도봉산 계곡의 물줄기가 손에 잡힐 듯이 보여 무념무상으로 수행하기에 안성맞춤 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대웅전 바로 뒤에는 원통전(관세음보살과 신도들이 모셔 있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지는 ‘옥천석굴원’이 보입니다. 
  예전에 천축사는 옥천암(玉泉庵)이라 불렸는데, 이곳에서 나는 ‘석간수(石間水)’ 때문이었습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에서 샘솟은 물은 대웅전 앞 샘터까지 이어집니다. 지나가는 객들에게 시원함과 휴식을 선사했을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천축사에는 신중전, 원통전, 독성각, 산신각 등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소란스러워진 마음을 다스리기에 제격인 장소란 생각을 해봅니다. 다양하고 소박한 소원들이 가득한 천축사를 뒤로하고 그의 부속 암자인 석굴암을 보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섭니다.

  석굴암을 가기 위해서는 ‘마당바위’를 거쳐 가야 합니다. 천축사 입구에서 마당바위까지 가는 길은 절대 녹록지 않은 곳입니다. 앞사람의 뒤꿈치만 바라보며 가파른 산길을 정신없이 오릅니다. 푸근한 듯한 도봉산에 이런 험지가 숨어있었다니요. 산의 새로운 모습을 본 듯합니다. 철봉 손잡이를 지팡이 삼아서 얼마나 올랐을까…. 무성한 나무숲이 끝나자마자 널따란 바위 지붕이 나타납니다. 갑자기 산 정상으로 순간이동을 한 기분이 들어 마냥 신기해집니다.



  발아래 펼쳐진 풍경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린 뒤 석굴암을 가기 위해 신선봉 방향으로 향합니다. 마당바위에서 신선봉 방향으로 올라가다 나오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100m 내려가면 석굴암이 나옵니다. 석굴암과 경찰산악구조대가 매우 근접한 거리에 있어서 찾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석굴암으로 향하는 돌계단은 무척 급경사여서 계단 옆의 봉을 잡고 천천히 올라가야 합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다 보면 형형색색 걸려 있는 불등(佛燈)이 눈에 들어옵니다. 맑은 소리를 내며 객들을 반기는 것 같습니다. 



■ 가파른 산세 속 고요한 암자 ‘석굴암’

  석굴암의 뒤편에는 선인봉의 거대한 바위가 보입니다. 석굴암은 그 바위 절벽의 좁은 공간에 있습니다. 커다란 바위에 ‘석굴암(石窟庵)’의 글자가 새겨져 있고, 뒤쪽으로 선인봉의 하단부가 이어져 있습니다.


  아담하고 고요하게 자리한 석굴암은 가파르고 많은 돌계단을 올라가야 볼 수 있을 정도로 탐방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참선 수도하는 승려들이 많이 찾았던 곳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 두 명이 지나갈 정도의 작은 마당을 지나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법당을 갈 수 있습니다. ‘만월보전’이라고 적혀 있는 법당 안에는 여러 탱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대웅전, 지장전, 산신각등 법당을 한곳에 모아 둔 것이 특징입니다.
  만월보전 앞에 세워진 석등은 작고 오래돼 보입니다. 석등 옆에 서니 그제야 발밑의 오밀조밀한 암자 전체의 풍경이 보입니다. 깊은 산중에 있는 작고 오래된 석등이 늘 평안하고 은은하게 빛나는 시간을 보내라고 속삭이는 듯 합니다.
 


  만월보전에서 내려와 석굴암 입구에 서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불전함 앞에서 합장을 마치고 마루에 앉아 계신 등산객이 보입니다. 
 
  “석굴암에 자주 올라오시나 봐요. 무슨 소원 비셨어요?”
  “2주에 한 번 정도 올라와요. 소원이라기보다 지금처럼 건강하고 편안하게 해달라고 비는 거죠.

  “이렇게 높은 암자까지 힘들게 올라오시는데 소원이 소박하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지금처럼 사는 게 좋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요. 지나고 보면 그때가 참 좋았지 후회하면서 그때는 그걸 복이라 생각 못하는 거지. 떵떵거리고 호령했던 사람도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리는 거 봐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작은 행복에 살지만 그런 일은 없잖아. 그런 게 좋은 거지. 사는 게 별거 없어요. 다 그래.”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란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불전함 앞에서 소박한 기도를 전하고, 마음 편하게 보내는 일상을 행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석굴암은 그런 사람들의 방문이 있어서 고요한 평안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심 없는 이야기를 전해주신 불자께 감사 인사를 건네고 마지막 탐방지인 도봉사로 향합니다. 호젓하고 가파른 돌계단과 낙엽이 그득하게 쌓인 산길이 끝날 때 즈음 오른쪽으로 서원교가 나타납니다. 
  서원교를 건너면 북한산 둘레길인 도봉옛길로 들어섭니다. 도봉사 앞을 지나는 도봉옛길은 숲에 포근히 둘러싸인 형태로 도심과 가깝지만, 숲속의 청정한 공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 가난한 자의 등불 하나, ‘빈자일등상’을 가진 ‘도봉사’ 

  도봉사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전설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사찰입니다. 그 중 도봉사에 있는 ‘빈자일등상’ 탑의 전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가난한 자의 등불 하나’라는 뜻을 지닌 ‘빈자일등상’의 전설은 이렇습니다.

  옛날 인도 사위국에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구걸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사는 마을에 석가모니가 찾아오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의 방문에 앞다퉈 몰려가 공양과 등불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난타는 아주 적은 양의 기름으로 아주 적은 등불만을 밝힐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갖은 고생을 해서 번 돈으로 기름장수를 찾아갔지만 적은 양의 기름은 팔지 않는다는 매몰찬 거절에 어려움도 겪습니다. 하지만 난타는 작은 등불이라도 밝혀 공양을 올리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기름 장수에게 100번이 넘는 절을 하고 사정을 해 기름을 얻습니다. 그렇게 얻은 기름으로 다른 사람들의 등불 사이에 자신의 작은 등불을 정성스럽게 놓습니다.
  모두의 등불이 환하게 밝혀졌던 하루가 지나자, 모든 등불의 기름이 말라 하룻밤 사이에 죄다 꺼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난타가 올린 등불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밝고 힘차게 타올랐죠. 그 등불을 본 석가모니는 그녀의 사연을 전해 듣고 난타를 여자 승려인 비구니로 받아들여 제자로 삼게 됩니다. 물질의 풍요로움보다 소박하지만 진실된 정성이 더 소중하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호기심을 가득 안고 도봉사에 도착했으나 아쉽게도 코로나 시국이라 닫혀있어 경내를 볼 수 없었습니다. 특히 전설을 이야기해 주는 듯한 코끼리 상(부처의 법을 상징)과 등불위에 난타의 모습을 조각해 올린 독특한 모양의 빈자일등상을 볼 수 없어 무척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사찰이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하산합니다. 

  천년 고찰길은 도봉대피소를 지나 천축사부터 탐방하는 것을 권합니다. 석굴암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이 매우 가파르고 험해서 초행길인 등산객은 천축사까지 탐방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힘든 시기가 지나 아름다운 풍광 속 사찰과 암자들을 자유롭게 탐방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도봉산 역사문화길 기행을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나무는 초록의 여름보다도 한해의 끝자락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처럼 우리 생의 최고의 한때도 뒤늦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떨어진 낙엽에서도 가을을 느낄 수 있고, 그 가을을 담고 있는 고찰과 암자의 편안한 고요함도 마음에 담을 수 있어서 이번 탐방은 행복했습니다.

  지금도, 도봉산 천년 고찰은 정갈하고 맑은 숨 한 모금이 부족해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열고 항상 기다립니다. 

<기록 송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