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지역문화 아카이빙 프로젝트

도봉 아키비스트가 기록하는 도봉의 인물과 공간

지역문화 아카이빙은 도봉이 품은 다양한 문화의 가능성과 지역 자원을 주민이 직접 탐색,
기록하고 구성하여 중요한 홍보 자산으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탈-도봉에서 스테이-도봉하고 싶어진 이유 - 창동역의 재발견

오키씨 |2020-11-16 | 조회 871

  그날도 그랬다. 흐릿한 조명, 길에서 올라오는 쓰레기 냄새, 술 취한 아저씨들의 알 수 없는 주정과 시큼한 술 냄새가 나를 맞았다. 창동역 1번 출구에서 우리집으로 가는 길은 늘 그랬다. 나의 서울생활은 20여 년 전 노원구 상계동에서 시작되었는데 육아와 낯선 서울살이에 지쳐있던 날들이었다. 어느 날 한 신문에서 노원구가 샐러리맨의 무덤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충격이었다. 안되겠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날부터 막 6살이 된 큰아이의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수소문했다. 그리고 도봉구 창동으로 이사를 왔다. 일단 무덤의 이미지만은 피하고 싶었다. 


  창동으로 이사 온 후 처음엔 아이가 어려서 활동반경이 그다지 넓지 않았다. 집에서 유치원, 집에서 동네 슈퍼, 집에서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가 전부였다. 그래서 솔직히 잘 몰랐다. 도봉구가 타지역에 비해 생활편의 시설 등이 낙후되어 있었다는 걸! 큰아이가 초등학교엘 진학하고, 작은아이도 유치원에 갈 무렵 나도 서울생활이 조금은 익숙해졌다. 그 때부터였던 같다. ‘탈도봉’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던 것이. 

  다른 곳에서 일을 보고 창동역에 내리면 난립해있는 포장마차가 불쾌했다. 집주변에 서점이 없는 것이, 극장이 없는 것이, 박물관이 없는 것이, 분위기 좋은 카페가 없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싫었다. 강남에 사는 동창들이 넌 왜 그렇게 북쪽에 사냐고, 아래쪽으로 내려오라고 얘기하면 억지미소를 지으며 우리 동네가 얼마나 좋은데 그러냐며 일부러 멋있는 척 어깨를 으쓱해 보이기도 했었다. 


  그렇게 늘 ‘탈 도봉’하고 싶었던 내가 이젠 ‘스테이(stay) 도봉’하고 싶어졌다. 동네의 재발견이라고 할까! 


▲ 넓어진 창동역 광장 / 깨끗하게 조성된 창동역광장,플랫폼61

  창동역은 1호선과 4호선 환승역이다. 경기북부에 위치한 대학으로 가는 버스도 이곳에서 학생들을 기다린다. 예전엔 1번 출구에 내리면 포장마차가 질서 없이 늘어서 있었고, 버스정류장도 사람이 서있기엔 좁았다. 사람보다는 차들이 다니기 편한 곳이었다. 들여다보고 싶은 곳보다 피해야 할 것이 많았다. 좁은 정류장의 인파, 취객, 무질서한 차와 포장마차들이 얼른 이곳을 떠나라며 나를 채근하는 것 같았다.


▲ 정돈된 포장마차 거리

  지금은 달라졌다. 낮에는 포장마차가 잘 정돈된 컨테이너에 쏙 들어가 있다가, 어스름 저녁 무렵이면 다시 거리로 나온다. 규격화되고 깨끗해졌다. 더 편안하고 청결하게 포장마차의 정취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는 광장 앞엔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농구대가 들어섰고,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놓여졌다. 집으로 가는 길 쪽엔 넝쿨나무가 올라가 자연 그늘을 만들도록 조형물이 설치되었다. 


▲ 창동역사에서 집으로 가는 길 산책로 / 시민들을 위한 농구대

  젊은이들이 거리에 많아졌고 밝아졌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날 미치도록 괴롭히던 쾌쾌한 냄새가 사라졌다. 1번 출구 바로 앞엔 차가 아닌 사람들을 위한 넓은 광장이 마련되었다. 지금은 코로나로 열리진 않지만, 동북4구 소상인들과 수공예 작가들의 프리마켓이 열리고, 청년들이 그들의 끼를 춤으로 발산하고, 도봉구에 터를 잡은 예술인들이 음악을 연주한다.


  가벼운 차림으로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서점도 생겼다.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어지는 여름밤이면, 슬리퍼 질질 끌고 나와 플랫폼61에 가서 이제는 대학생이 된 딸아이와 가볍게 한잔 한다. 컨테이너로 조성된 플랫폼61 야외테라스엔 우리집 반려견 콩순이도 함께 할 수 있어 더 좋다. 


▲ 창동역1번 출구 마을 북카페 행복한 이야기

  창동 역사 1번 출구 하부엔 ‘행복한 이야기’라는 북카페가, 2번 출구엔 ‘너른마루’라는 마을카페가 있다. ‘행복한 이야기’는 집중해서 공부해야 할 때 자주 가는 곳이다. 넓고 쾌적하고 조명도 적당하다. 공부하는 청장년층이 많은 곳이다. 2번 출구 쪽 ‘너른마루’는 소모임하기 적당한 마을카페다. 카페의 절반은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을 위해 편안한 마루가 있고 동화책도 손닿는 곳에 꽂혀있다. 동네주민 누구든 와서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곳이다. 물론 커피 값도 비싸지 않고 맛도 좋다.


▲ 창동역2번 출구쪽 마을카페 너른마루

  공간이 주는 힘은 참 강력하다. 그 속에 이야기가 담겨있을 땐 특히 더 그렇다. 아이들이 초등생일 때 마을에서 함께 창동 역사에 그래피티로 그림을 그려 넣었다. 창동역을 개보수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그림은 사라졌다. 사라진 그림이 아쉽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어제 일처럼 재잘재잘 떠올라 자주 이야기 하며 웃게 된다. 창동역에서 마을버스로 세 정거장 거리에 있는 어린이도서관에선 동네주민들과 된장을 만들어 먹었다. 햇살 가득한 옥상에서 잘 익은, 해를 품은 된장이다. 집에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된장 담아 먹기가 동네의 동아리활동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혀끝에 맴도는 구수한 향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2015년부터 창동역 광장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프리마켓에 친환경 대안생활제 셀러로 참여도 했었다. 유해화학물질과 플라스틱 쓰레기 줄이는 방법을 공유하고 나누고 싶었다. 청소년을 위한 마을학교도 열어, 동네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동네에서 만들어내는 소소한 행복꺼리가 늘어나고 난 그렇게 토박이가 되어갔다. 

  이웃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왔던 창동역은 많이 달라졌다. 어떤 공간은 사라지고 부서졌다. 그럼에도 서운하지만은 않다. 다시 일으켜 세워지고 가꿔지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 곳에서 기존의 삶과 새로운 삶이 어울려 또 다른 활기를 만들어 내는 것도 보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새로운 기억이 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담게 될 것이다. 좋은 이웃이 많은, 그래서 나누고, 경험할 것이 많았던 우리 동네. 그럼에도 여전히 새로운 변화와 경험을 기대하게 되는 우리 동네. 탈도봉하고 싶었던 내가 스테이 도봉하는 이유다. 

<기록 오키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