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아카이빙 프로젝트
도봉 아키비스트가 기록하는 도봉의 인물과 공간
지역문화 아카이빙은 도봉이 품은 다양한 문화의 가능성과 지역 자원을 주민이 직접 탐색,
기록하고 구성하여 중요한 홍보 자산으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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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성당 고양이와 동네 사람들 (2) -치킨, 두호네 이인성 씨
이진희 |2020-11-26 | 조회 617
쌍문동은 서울시에서 중장년층과 노년층 인구 비중이 높은 지역 중 하나이다. 젊은이들이 학교에 가고 회사에 가느라 낮 동안 동네가 텅텅 비어버리는 다른 지역과 달리, 우이성당 근처 골목길은 낮에도 여전히 온기가 흐르는 동네이다. 골목에 모인 이들의 대화 속엔 세월의 지혜가 녹아있다.
우이성당 근처 골목길 주민들은 활기찬 낮 시간을 보낸다. 담벼락과 화단에서 정성스럽게 가꾼 화초에 물을 주고, 고추와 생선 같은 것을 볕 아래 말리며 일상을 채워나간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이전에는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묻는 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갓 노년기에 접어든 1인 가구 이인성 씨는 쌍문동이 가진 낮 풍경이 너무 좋아 이주를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보통 서울이면 삭막한 도시를 떠올리기 쉽잖아요? 전에 살던 다른 구 원룸은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어요. 그냥, 물 트는 소리, TV 소리가 나면 이제 사람이 들어왔나 보다 했었지. 우이 성당쪽에 사는 친한 지인이 빈 방이 있다고 해서 별 기대 없이 보러 왔는데, 동네 분위기에 이끌려서 계약하게 되었어요. 분명 서울인데 서울 같지 않고 고향에서 느꼈었던 편안한 느낌이 들더라고.”
Q: 쌍문동에 사는 동안에도 동네가 계속 좋으셨어요?
A: 그렇죠. 집주인 사정으로 지금은 도봉동 쪽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마음 같아서는 그곳에 내내 살고 싶었어요. 5년 넘게 살기도 했고, 이웃들도 참 넉넉한 인심이었어. 그렇다 보니 옆집 뒷집 앞집이랑 다 사이가 좋았어요. 명절 때면 혼자 산다고 전이며, 갖은 나물 무침, 과일들을 여러 집에서 챙겨주더라고. 서울에 그런 동네가 또 어딨겠어? 말하는 지금도 생각나고 그립네.
Q: 지금 키우시는 고양이도 우이성당 골목길에 살던 고양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키우게 되신 건가요?
A: 요새 젊은 사람들은 고양이 참 좋아한다고 하던데. 사실 우리 또래들은 강아지가 좋지, 고양이는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나도 평생 강아지만 두 마리 키워봤지. 고양이는 모르기도 하고 짝짓기 시즌이 되면 울어 재끼는 통에 밤에 잠자기도 힘들게 해서 좋아하지 않았었어. 그런데 두호를 만나게 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지.
나도 처음엔 가족이 있었는데 이혼하고 자녀들은 다 분가시키면서 혼자가 됐어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노년의 삶도 시작하게 됐는데, 때때로 적적한 마음이 찾아오더라고.
2~3시면 퇴근을 하는데, 그날도 일을 마치고 조금 기분이 그래서 멍하니 창문 밖을 보고 있었을 때였어요. 지나가던 누런색 고양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피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더라고. 배가 고픈가? 해서 집에 있던 고기를 조금 썰어줬는데, 피하지도 않고 허겁지겁 잘 먹었어.
고 녀석, 밥 챙겨주는 사람 만났다고 생각했는지 그 이후로 자주 오더라고. 그렇게 자꾸 보니 정도 들고, 내가 매일 고기 주기엔 형편이 안되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물어봐서 사료 한 포대도 사게 됐어요. 매일 보이는 건 아니지만 빈 밥그릇을 보면 잘 먹고 갔구나 해서 마음이 참 좋았어.
▲ 두호
Q: 단순히 밥을 챙겨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집 안까지 고양이들을 들이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나는 고양이와 집안에서 함께 지내는 건 반대인 사람이었어요. 이리저리 날리는 고양이 털도 신경 쓰이고, 그냥 밥만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생각했어요. ‘죽지 말고 살아라’ 그런 마음으로요.
그런데 2015년 겨울이 유독 추웠거든. 쓰레기를 내다 버리러 가는 잠깐 사이에 손이 얼어붙을 정도로 정말 추운 겨울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선명해. 두호가 첫째 고양이고, 둘째가 치킨인데 그때 치킨이는 태어나기 전이었던 것 같아.
두호가 한 8개월 차나 되었을라나? 작은 몸으로 오돌오돌 떨면서 우리 문을 앞발로 툭툭 노크하듯이 치는 거야. 혼자 사는 집이지만 사람 사는 집이라고 밥 짓고 난방 돌리는 온기가 느껴졌는지 집 앞을 떠나질 않더라고. 밥을 줘서 보내도 가질 않고 계속 그 자리에 맴돌고 있었어. 하루 이틀 지켜보고 있었는데, 마침 집에 들른 내 딸애가 그러더라고. “아버지 쟤 저러다 죽어요. 겨울 동안만이라도 안에서 돌봐줘요.”라고. ‘딱, 겨울 동안만이다’하고 문을 열어줬더니 호다닥 들어오는 게 귀엽고 안쓰럽고 그래서 마음이 더 쓰였어.
한 계절만 함께 보내려 했는데, 봄 되고 초여름 되니까 밖에서 놀다가 자기 쏙 빼닮은 어린 고양이 한 마리도 데리고 왔어. 덩치가 정말 작아서 뒤에서 보면 딱 삼계탕 닭 모양이라서 놀리면서 치킨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좀 크면 이름 바꿔주려고 했는데 음식 이름으로 동물 이름 지어주면 잘 산다고 해서 지금도 그냥 치킨이에요. 그렇게 그냥저냥 같이 살게 된 거지. 두 마리가 사이도 워낙 좋고, 보고 있으면 손주처럼 흐뭇해요.
▲ 두호와 치킨
A: 고양이들이 서로 영역 차지한다고 크게 싸우기도 한다던데 우리 애들은 바깥에 마실 나가서도 잘 안 싸워. 외려 줄줄이 밥 주라고 우리 집으로 끌고 오는 것 같던데. 딸애도 애들 본다고 집에 자주 오게 되니까 내가 복덩이를 들인 것 같아 참 좋았어요.
쌍문동 살 때 TV를 보면서 집안에 고양이들이랑 누워있으면 창문 바깥에 동네 고양이들이 지나가면서 한 번씩 아는 척을 해. 빤히 쳐다보거나 어떤 애들은 놀자고, 밥 달라고 야옹하고 우는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어. 우리 두호같이 누런색이 선명한 치즈태비나 삼색이, 턱시도, 까만 고양이가 자주 다녀갔어. 왠지 친척지간 같이 보이더라고. 곧 겨울인데 다들 잘 지내려나 걱정도 되네.
Q: 친하게 지내던 동네 분들도 고양이를 키우셨다면서요. 기억나는 분이 있을까요?
A: 고양이들 끼리 친해서 나도 더 친근하게 느끼는 거지. 골목 윗집 중에 분식집 하던 집이 있었어요. 그 집 고양이 렌이 우리 두호랑 호형호제하던 사이여서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왔었어요. 한 번은 그 집 어머니가 렌 찾으러 우리 집까지 오고 그랬어요. 참 인상이 푸근하신 분이었는데, 음식도 그렇게 맛있게 할 수가 없어요. 아드님도 싹싹해서 ‘새로운 고양이 장난감이 나왔다.’, ‘간식으로는 이게 좋다.’ 하면서 우리 집에 갖다 주기도 했었지. 다들 하나같이 고마운 사람들이었어요.
Q: 쌍문동 우이성당 집이 어르신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A: 제 2의 고향. 노년기에 마음 편한 곳에서 사는 것도 큰 복이라고 했어요. 한 번은 문을 깜빡하고 안 잠그고 나간 적이 있었어. 친구만나다 중간에 그게 생각나긴 했는데 희한하게 하나도 걱정이 안 되더라고. 이웃끼리 서로 다 알고 지나칠 때마다 밝게 인사하고. 그런 동네에 도둑이 들겠어요?
6년 가까이 살면서 사건, 사고 일어났다는 얘기도 못 들어봤고, 참 정감 넘치는 곳이었어요. 지금 도봉동 집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그 동네로 옮길 생각이에요. 이번에는 우리 치킨 두호가 살기 좀 널찍하고 마당도 혼자 쓸 수 있는 곳이면 좋겠구먼.
도둑고양이에서 길 고양이로, 이제는 함께 살아가는 가족으로. 고양이는 쭉 그냥 고양이였을 텐데, 인성 씨 마음속 ‘고양이’라는 존재는 10년 전과는 너무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해 준 동네는 행복하고 소중한 공간으로, 언제라도 상황이 바뀌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으로 인성 씨 마음속에 자리 잡은 듯했다.
인성 씨와의 대화를 기록하고 정리하면서 좋은 집과 좋은 가족이 무엇일까에 대해 떠올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가진 게 차고 넘치는 데도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요즘, 우리 마음을 빈틈없이 가득 채워주는 행복의 조건은 사실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
“삶이 넉넉하지는 않지. 젊을 때 바라던 모습으로 살고 있지도 않고. 그래도 우리 자식들 다 키웠고, 지금은 치킨이, 두호 굶기지 않고 장난감 사주고 간식 넉넉히 사줄 정도는 돼서 그게 행복해. 덕분에 담배도 끊게 되고. 나는 좋은 걸 더 많이 얻은 것 같아요. 다시 우이성당 쪽으로 이사 갈 때는 사글세 말고 전세값 마련해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거기가 나는 그냥 참 좋더라고. ”
<기록 이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