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아카이빙 프로젝트
도봉 아키비스트가 기록하는 도봉의 인물과 공간
지역문화 아카이빙은 도봉이 품은 다양한 문화의 가능성과 지역 자원을 주민이 직접 탐색,
기록하고 구성하여 중요한 홍보 자산으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기록하고 구성하여 중요한 홍보 자산으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어둠을 마주하며 빛으로 나아가는 ‘평화문화진지’
이혜경 |2020-12-09 | 조회 661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과 학살 등 끔찍한 재난이 있었던 어두운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하여 떠나는 여행을 말한다. 블랙 투어리즘(Black Tourism), 그리프 투어리즘(Grief Tourism)이라고도 하며, ‘역사교훈여행’이라 일컫기도 한다.
도봉구에서 다크 투어리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바로 ‘평화문화진지’다.
▲ 입구에서 바라본 평화문화진지
어둠의 역사, 대전차방호시설이 세워지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서울에 침투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김신조 간첩 일당 청와대 피습사건이다. 다음해인 1969년 ‘서울 요새화’ 일환으로 도봉구에 대전차방호시설이 들어섰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 대전차 공격을 막지 못한 악몽이 서려 있던 곳이다.
흉물로 버려지다
1970년에는 방호벽 위에 2층에서 4층까지 아파트를 지었다. 적에게 군사시설을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위장술이었다. 유사시에는 아파트를 무너뜨려 적의 진입을 막겠다는 계산도 들어 있었다. 벙커가 5개였기에 아파트도 5동으로 지었다. 처음에는 병영처럼 군인들이 살았다. 그러다 일반 시민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 아파트가 2004년 철거되었다. 노후화로 붕괴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철거되었으나 대전차방호시설은 남았다. 군사시설이기에 철거가 불가능했다. 흉물로 방치되었고 우범지대가 되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버려졌다.
▲ 대전차방호벽 위에 아파트가 세워졌다. 그 아파트가 철거된 뒤에는 흉물이 된 채 방호벽만 남았다. (제공 : 평화문화진지)
다섯 개 벙커의 변신
도봉구의 주민들이 나섰다. 2014년 7월에 시민추진단이 결성되었다. 흉물이 된 대전차방호벽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주민들을 위한 문화예술창작공간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역사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물로 인정받아 2016년 ‘서울시 미래 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철거 대신 공간을 재생하기로 했다. 설계를 공모하고 건축에 들어가 2017년 10월 31일 개관하였다.
기존 벙커인 콘크리트 벽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벙커 앞에 덧댄 건물은 예술가와 주민들을 위한 공방, 전시 공간,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됐다. 5개의 벙커는 5개의 동 이름을 갖게 되었다. 1동 시민동, 2동 문화동, 3동 창작동, 4동 예술동, 5동 평화동이다.
‘평화문화진지’라는 이름은 서울시온라인 투표로 정해졌다.
▲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평화문화진지. 1동 시민동의 팻말도 보인다.
전문 건축가들도 인정한 우수 건축물 ‘평화문화진지’
‘평화문화진지’는 2018년 ‘제36회 서울시 우수 건축상’을 수상하였고, ‘서울을 바꾼 10개의 건축물’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기존 벙커의 콘크리트 벽을 남기면서 새로 추가한 공간은 나무(탄화목)를 외장재로 사용하였다. 도봉산, 수락산, 중랑천 같은 주변 공간으로 건물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만들었다.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중정’과 아쉬운 ‘지하통로’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특히 빛나는 장소는 ‘중정(中庭 /Courtyard)’이다. ‘중정’은 한옥에서 볼 수 있는 건축양식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의 ‘ㅁ’자형 뜰을 말한다. ㄷ자형 벙커를 그대로 두면서 앞부분에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을 지어 ㅁ자형을 만들고 그 사이에 마련한 공간이다. 야외용 탁자와 의자가 있어 차 한 잔을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다. 작가들의 작업실 뒷문과도 연결이 되어 있어 야외 작업실이나 전시장으로도 좋을 것 같다. 콘크리트 벙커의 삭막함 속에도 여유로움을 펼쳐준 건축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 평화문화진지의 중정. 햇볕가리개를 설치하고 야외용 탁자와 의자를 비치했다. 해먹도 있다.
건축가가 아쉬워했던 것 중 하나가 뒤늦게 발견한 2동과 3동 사이의 ‘지하통로’다. 설계에 반영하기엔 늦어버려 손을 쓸 수 없었다 한다. 강화유리를 덮은 ‘지하통로’를 지나다니며 볼 수 있었다면, ‘평화문화진지’가 품고 있는 어둠의 역사가 더욱 실감났을 것이다.
평화광장과 베를린장벽
‘평화문화진지’에서 유일하게 방호벽이 사라지고 앞뒤가 뚫린 공간이 있다. 건물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평화광장’이다. 바로 곁에 있는 ‘다락원체육공원’으로 드나들 수 있는 광장이자 통로이다.
단절의 상징인 벽이 사라진 공간에는 교류와 소통이 있다. 한반도의 남북은 언제 저런 모습이 될는지.
▲ 평화광장은 이 건물에서 유일하게 방호벽이 없는 부분이다.
광장에는 아이들이 분필로 그리고 놀았던 흔적이 보인다.
남쪽 잔디밭에는 ‘베를린장벽’이 설치물처럼 서 있다. 한 조각처럼 이어져 있지만 자세히 보면 세 조각이다. 먼 독일에서 공수되어 오느라 장벽 위에는 조각마다 구멍이 두 개씩 뚫려있다.
‘베를린장벽’을 기증한 분은 독일의 개인 사업가 엘마어 프로스트 씨다. 그는 ‘베를린장벽’을 기증하면서 "이 장벽이 통일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독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은 무너졌고 독일은 통일을 하였다. 우리는 여전히 무너뜨리지 못한 방호벽을 지니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베를린장벽’은 이런 우리의 현실을 각인시키듯 자리를 잡고 있다.
▲ 베를린장벽의 앞부분과 뒷부분. 평화광장 안쪽에 설치되어 있던 것을 잔디광장으로 이전했다. 사람들이 더 많이 볼 수 있게 배려한 듯.
‘진지한 책방’에 들어가 진지하게 ‘평화문화진지’와 만나기
‘진지한 책방’이란 팻말을 발견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다. 궁서체의 진지한 책방일지 모른다고 겁먹지 마시고 그곳에 들르시길. 책꽂이에 꽂힌 책들에 잠시 눈길을 주다 오른쪽에 나 있는 복도 쪽으로 발길을 돌리기 바란다. 벙커 부분을 살려 만든 ‘상설전시관’이다.
‘평화문화진지’의 역사가 글과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다. 북쪽 벽에는 총포를 발사하는 총구들이 보인다. 이곳이 벙커임을 실감나게 한다. 복도의 끝에서 롤스크린으로 동영상까지 본다면 ‘평화문화진지’를 그야말로 진지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상설전시관은 진지한 책방 안에 있다. 양측 벽에 평화문화진지의 역사가 조선시대 다락원부터 상세하게 설명된 글과 사진이 있다.
북쪽을 향해 난 소총 저격 공간도 보인다.
‘평화문화진지’를 빛나게 하는 문화 예술 활동
‘평화문화진지’에는 입주 작가들이 있다. 그들은 연중 쉬지 않고 갖가지 작품 활동을 한다. 전시회, 공연, 퍼포먼스, 원데이 클래스 등으로 주민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문화와 예술의 장을 열고 있다. 요즘은 이곳도 코로나 때문에 기획된 전시회조차 제대로 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내가 찾아간 날은 딱 한 곳에서 전시회를 했다. 발열 체크와 인적 사항 기록을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다.
그림 전시회, 너 얼마만이냐.
▲ 전시 중이라는 팻말을 보자 반가워 들어가 보았다. 못 보는 전시회는 홍보물을 챙기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평화문화진지’를 둘러보다 보면 앞뒤 벽에 벽화가 있다. 동네 골목에서 보는 아기자기한 벽화가 아니라 우리의 불편한 진실을 깨우치는 그림들이다. 심각한 기후변화를 경고하는 그림, 사람의 피부색은 서로 다를 뿐이지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그림, 답답하기 그지없는 코로나의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은 그림 등이 있다.
생각이 많아지는 그림들이라 한참을 쳐다보게 된다.
▲ 평화문화진지 방호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왼쪽은 제목이 ‘the days are coming’ 오른쪽 그림은 제목이 ‘그곳의 아이’이다. 보고 있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학 모양의 전망대와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옥상의 풍경
‘평화문화진지’의 동쪽 끝에는 휘돌아 나가는 실개천 대신 20미터 높이의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의 모양은 열십자의 형태로 새가 날개를 펴고 나는 모습이다. 그 새는 도봉구의 상징 새인 학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전망대’를 오를 때는 학의 날개를 타고 올라가는 상상을 해도 좋을 듯하다. ‘전망대’에서 그야말로 확 트인 풍경을 본다. ‘창포원’의 숲과 ‘다락원체육공원’, 의정부 도로와 중랑천 등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을 형상화하였다는 전망대다.
전망대 아래에는 실물인 대전차와 장갑차가 전시되어 있다. 전망대로 올라가면 중랑천과 의정부로 가는 길도 보인다.
‘옥상공원’은 ‘평화문화진지’의 백미다. 도봉산, 수락산, 북한산 등이 파노라마 사진처럼 펼쳐져 있어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름답다. 250미터 길이의 긴 옥상을 걸어가면 7호선 전철이 한 편의 영화 장면처럼 눈앞에서 스쳐 지나가는 모습도 만날 수 있다.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이면 ‘다락원체육공원’의 잔디가 평화롭게 펼쳐져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풍경들이 내 마음을 촉촉이 적신다.
▲ 옥상의 중간에 이정표가 있다. 독도보다 더 가까운 평양과 금강산을 못 가보는 우리의 현실을 알려준다.
부모와 함께 옥상에 자전거를 끌고 온 어린 남자애는 지나가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저 아이에게 평화문화진지는 어떻게 기억이 될까.
역설적인 공간 평화문화진지
‘평화문화진지’는 역설적인 공간이다. 평화와 문화라는 이름을 붙여도 여전히 군사시설물이다. 벙커 부분은 국방부, 새로 만든 스튜디오 등은 서울시 소유다. 국방부 소유 부분은 언제라도 군사시설로 전환될 수 있게 빈 공간으로 남겨져 있다. 예술과 문화의 공간으로 만들어졌지만 분단의 긴장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긴장의 끈은 언제나 놓을 수 있을까?
▲ 평화문화진지의 전시회장이다. 평소에는 그림 등을 전시하는 문화 행사 장소이나 유사시에는 대전차(탱크)가 들어가는 벙커다.
창문은 대전차의 포신 발사 공간이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평화문화진지의 역설이 그대로 다가왔다.
긴 일직선 건물인 ‘평화문화진지’는 곧게 흐르는 한줄기 강물 같다. 긴장과 공포 대신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기를 바라며 ‘평화문화진지’를 둘러본다.
▲ 도봉산에서 흘러나온 한 줄기 강 같은 평화문화진지
<기록 이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