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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 아카이빙 프로젝트

도봉 아키비스트가 기록하는 도봉의 인물과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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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고 구성하여 중요한 홍보 자산으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우이성당 고양이와 동네 사람들 (3) -렌, 토리와 박경창 씨

이진희 |2020-12-09 | 조회 550

 

  사랑과 헌신의 나비효과. 우이성당 근처 주민들은 고양이 활동가로 이도미 씨(1편 소개) 덕분에 굶고 병들어 죽어가는 길고양이들의 수가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마음에도 변화는 싹텄다. 동네 사람들은 비슷한 장소에 나타나는 고양이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마음을 열게 되었다. 
  동네 고양이들의 생활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약간의 인기척만 들려도 허겁지겁 도망가는 삶을 살지 않아도 괜찮게 된 것이다. 조금 더 담대한 성향의 고양이들은 맘에 드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눈 인사를 건네거나 뺨을 부비고 친근감을 표하기도 했다. 경창 씨 가족과 고양이 렌의 만남도 그렇게 시작됐다고 한다. 


  Q: 렌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A: 2015년 겨울쯤이었던 것 같아요. 동네에 얼추 비슷하게 생긴 치즈색 고양이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렌은 몸집이 많이 작아서 다른 고양이들과 달라 보였어요. 
  렌은 유독 저희 집 근처에 와서 울곤 했었어요. 특히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항상 같은 자리에 있어서 시선이 갔어요. 배고파하는 건가 싶어서 저희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밥을 주게 되었고 이따금씩 안보이면 마음이 철렁하더라고요. 
  렌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저희 마음속으로 들어왔어요. 처음엔 ‘나비야’, ‘야옹아’ 입에서 나오는 대로 부르다가 ‘렌’이라고 정식으로 이름도 붙여주면서 반려동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목걸이를 달아줬어요. 돌보는 가정이 있으니 함부로 해치거나 잡아가지 말라고요. 



  Q: 이도미씨와도 왕래가 있다고 들었어요. 도움을 받으신 게 있나요?

  A: 저희 동네 길고양이를 입양한 분이라면 다 한 번쯤은 그 분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너무 고마운 분이시죠. 
  아무래도 저희는 고양이를 돌보고 키운 경험이 없다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것투성이였어요. 도미님이 길고양이를 돌보시는 걸 멀리서나마 보면서 좋은 일 하시는구나 알고는 있었는데, 크게 교류는 하지 않았었어요. 이렇게 새로운 이웃을 만나게 된 것도 다 렌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렌과 함께 하면서 도미님께 궁금한 걸 물어보면서 친분을 쌓게 된 것 같아요. 
  한번은 렌이 뭘 잘못 먹었는지 배탈이 심하게 난 적이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렌이 아직 사람을 많이 경계 하던 상태여서 동물병원에 데려가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도미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늦은 시간임에도 손수 약을 가져다 주셨어요. 덕분에 렌은 배앓이를 잘 넘겼네요. 도미님이 렌을 초창기부터 돌봐주셨던 분이어서 저도 과거의 렌 모습이나 특성이 궁금할 때 이것저것 여쭤보았었어요.
 
  Q: 렌 입양 후 경창씨 가족이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A: 저희 가족이 원래는 고양이에 대해 무덤덤했고 특히 아버지는 길 위의 동물이 집안을 기웃거리는 것에 대해서 강경하게 반대 하셨어요. 그런데 렌이 워낙 애교가 많아서, 어느새 아버지 마음도 다 녹였네요. 아버지가 이제는 손수 밥도 챙겨주시고, 렌이 안 보이면 제일 먼저 찾으세요. 
  요새 어머니 카톡에는 제 사진은 없고 전부 렌 사진 뿐이에요. 전에는 쑥스러움을 타는 제 성격 때문인지 가족 간의 살가운 대화가 많지 않았는데, 렌 사진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대화도 늘어나게 됐어요. 이제 저희 가족에게 렌은 정말 아들 또는 형제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아요. 

  Q: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서 이웃 간의 관계 변화도 있었나요?

  A:  초반에는 조금 갈등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오래 키운 나무 밑에 고양이가 용변을 봐서 나무가 말라간다며 저희 렌을 콕 짚어서 탓하신 분이 있었어요. 또 고양이들 짝짓기 철이 왔을 때 바깥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고양이 울음소리가 혹시 렌이 아닐까 마음 졸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주위 분들이랑 잘 지내고 있어요. 렌과 함께 지내면서 주변 청소에 꽤 공을 들이고, 동네 분들에게 렌 이야기를 전하면서 음식을 나눠드리기도 했어요. 렌을 콕 짚어서 나무라셨던 분의 마음도 많이 누그러지셨어요. 대화를 자주 나누다 보니 예전보다 더 잘 지내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저희 가족은 이 동네 토박이예요. 제가 유치원 때 이사 와서 30년 넘게 한 곳에서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이웃 분들과 두루 친한 어머니와 달리, 저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이웃분이라고 해도 먼저 말을 걸고 대화가 이뤄지는 일은 없었어요. 
  렌과 함께 하면서 변화가 생겼어요. 렌이 산책냥이여서 주로 집 바깥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거든요. 렌을 찾으러 나섰다가 고양이에게 관심을 보이시는 분이나 다른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을 만나 대화를 하게 되더라고요. 간단하게 고양이 장난감 같은 것도 선물하고 서로 정보도 나누고 했어요.  동네가 더욱 정감있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Q: 새로운 고양이도 둘째로 들이시게 되었네요?

  A: 네, 저희 둘째 고양이 이름은 토리고요. 생긴 건 렌과 꼭 닮아 한 핏줄 같지만 정황상 둘이 가족 사이는 아닌 것 같아요. 렌이 혼자 외롭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제는 둘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요.
  토리는 태어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저희 집 1층 외부랑 닿아있는 창고에서 발견됐어요. 한참 사람에 대해 경계를 하더니 렌과 친해져서 저희 집으로 들어오게 됐네요. 집으로 한발 한발 들어오는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는데 볼 때마다 감동이에요. 토리는 암컷인데, 아기 고양이 특유의 귀여움 때문에 온 가족이 매력에 홀딱 빠져있어요. 



  Q: 렌과 토리를 키우면서 경창씨 생활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제가 김포에서 직장을 다니는데 쌍문동에서 매일 출퇴근하기는 먼 거리여서 직장 근처에 숙소를 잡게 되었어요. 그런데 고양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거의 매번 주말마다 쌍문동 본가에 오고 있거든요. 그 덕분에 평소에 다소 서먹했던 아버지와도 자주 만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고 저와 동생의 관계도 더 돈독해 진 것 같아요. 
  길고양이를 입양한 이 동네 사람들처럼 저희 가족 역시 어떤 특별한 계획을 하고 입양을 한 것은 아니었어요. 지금은 렌과 토리가 저희 집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고, 고양이들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을까요?

  A: 저는 쌍문동에 거주하고 직장 다니는 평범한 30대 청년입니다. 처음에 제 얘기가 듣고 싶다고 하셨을 때 조금 어리둥절했습니다. 제가 뛰어난 업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왜 보자고 하실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렌과 토리의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해서 인터뷰를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별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삶 속에서 강렬한 행복감을 가져다 준 친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렌과 토리는 예기치 않게 제 삶속으로 들어와서 저희 가족을 끈끈하게 만들어 주었고 더 나아가 이웃과 동네에 대한 좋은 기억까지 심어준 소중한 존재입니다.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은 분들이 있습니다. 저를 만나기 전까지 도미님 같은 분들이 길 고양이들의 고된 삶을 잘 지켜주셨기 때문에 제가 렌과 토리와 남은 삶을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한때 길 고양이 입양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했어요. 자연의 질서대로 살아가고 있는 고양이들에게 오히려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닌지 고민이 컸었습니다. 그때 길 고양이 입양 경험과 마음을 나눠준 동네 친구들에게 이 기회를 통해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저의 소중한 반려 고양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저도 더 열심히 일하고 있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저희 우이성당 동네 분들도 코로나 시기 잘 극복하시고 더 행복해 지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낮은 자세로 생명을 위해 봉사하시는 모든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우이성당에서 덕성여대 후문에 이르는 주택가. 언뜻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골목길. 만약 그곳에 발길이 닿게 된다면 따스한 햇볕아래 여유로이 누워 다가오는 사람 손길을 피하지 않는 고양이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경창씨처럼 고양이를 지켜보면서 미소 띠고 있는 주민들을 만난다면, 당신이 먼저 말을 건네 보아도 괜찮다. 고양이와 사람이 모두 따스한 동네. 정겨운 우리의 집. 쌍문동 우이성당 골목은 우리 모두에게 그런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기록 이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