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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 아카이빙 프로젝트

도봉 아키비스트가 기록하는 도봉의 인물과 공간

지역문화 아카이빙은 도봉이 품은 다양한 문화의 가능성과 지역 자원을 주민이 직접 탐색,
기록하고 구성하여 중요한 홍보 자산으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중랑천에서 다락원공원까지 -노을 맛집을 찾아 떠나는 개집사의 자전거 여행

오키씨 |2020-11-26 | 조회 690

 

다락원 잔디광장에서 바라보는 도봉산

  <5초 안에 영화 속으로 빠지게 되는 이상한 곳>
  “5,4,3,2,1”
  “빠아앙~~” 
  열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하늘은 아까부터 수줍은 듯 발갛게 물들어 있었고, 씩씩하게 달려가는 열차 뒤로 도봉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눈앞엔 고르게 잘 자란 잔디가 운동장을 덮고 있다. 왼쪽엔 과거 대전차방호시설로 쓰였던 벽이 이제 작가들의 멋진 벽화 전시장이 되어 서 있다. 여기는 개집사인 나와 우리집 반려견 콩순이가 즐겨 찾는 저녁노을 맛집, 다락원 공원이다.


씩씩하게 달려오는 열차. 
내겐 어릴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 바로 그것이다.


평화문화진지벽화

  하얀 천막지붕이 드리워진 평상에서 반려견과 함께 이 풍경을 보고 있으면 살아 움직이는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기차도 살아있고, 도봉산도 살아있고, 하늘도 잔디밭도 벽화도 살아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게 너무나 완벽하게 조화로워서 혹시 이곳이 영화 촬영장은 아닐까 하는 환상에 빠진다. 이곳에서 나는 어릴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를 자주 떠올린다. 애틋할 만큼 아름다운 일몰과 기차 소리 때문일까. 아날로그 감성이 깨어난다. 


(왼)영화관 의자 대신 하얀 천막이 근사한 평상, (오)살아있는 도봉산

  <동∙행∙자전거: 동네에서 행복 찾는 자전거 여행>
  ‘다락원(院)’은 조선시대 나랏일로 여행하는 관리들을 위해 도봉동 일대에 설치되었던 일종의 숙박 시설이었다고 한다. 그곳이 지금은 시민 모두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체육공원이 되었고, 반려견도 동반 가능하다. 넓은 축구장과 실내 배드민턴장, 실내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물놀이 시설이 있다. 지하철 1호선과 7호선 도봉산역에서 내리면 금방이다. 그럼에도 나는 주로 자전거를 이용한다. 도봉구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다락원까지, 반려견 콩순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여정이 많기 때문이다. 


(왼)다락원 축구장. 도봉산과 수락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오)중랑천 자전거 도로. 페달을 천천히 밟을수록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락원을 향한 여정의 출발 지점은 중랑천 상계교 아래. 도봉구청을 옆으로 끼고 노원교-상도교를 지나면 왼쪽에 누원초등학교가 있다. 이제 저 멀리 도봉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가면 중랑천변에 농구코트가 있고, 계단으로 올라가면 우리의 ‘중간 정거장’ 창포원에 도착한다. 

(왼)반려견과 산책하기 좋은 창포원, (중)여름날 창포원, (오)모네의 정원을 닮은 창포원

  창포원은 사계절이 아름다운 생태공원이다. 특히 봄이면 노랑꽃창포, 부처 붓꽃, 타레붓꽃, 범부채등 130여 종의 붓꽃 군락을 볼 수 있다. 한여름의 창포원은 ‘모네의 정원’을 생각나게 한다. 빛과 색채를 그림에 담았던 모네처럼, 수양버들의 녹음과 다채로운 꽃들의 색채가 여름밤 불꽃놀이처럼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가을엔 키보다 더 큰 억새가 물결친다. 그냥 가보면 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꽃, 풀, 나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창포원 입구에는 반려견 동반 시 배변처리와 목줄 착용에 관한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오히려 안심이다. 이 표지판은 역설적으로 ‘반려견과 산책할 수 있어요’ 하고 친절하게 말해주는 가이드 같다. 그만큼 반려견과 동반할 수 있는 곳이 의외로 많지 않기 때문이랄까? 

  <강아지 코에서 불이 나요>
  지금부터 우리 집 콩순이 코가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일단 흙냄새, 나무에 마킹한 다른 반려견 친구들 냄새부터 맡기 시작한다. 봄부터 여름까진 한창 피어있는 꽃창포와 붓꽃 향기를 맡았다. 요즈음엔 창포원을 물결치는 억새 냄새를 맡는다. 잔디 사이로 올라온 민들레와 황새냉이 냄새도 맡았고, 불쑥 불쑥 비집고 올라온 쑥과 쇠비름 냄새도 맡았다. 특히 낙엽이 지고 유기물이 생기기 시작하는 요즘, 콩순이 코는 냄새 맡느라 정신이 없다. 내가 보기엔 코에서 불이 날 지경이다. 그래도 이 녀석은 좋은가 보다. 코가 촉촉하다 못해 콧물 질질, 눈물도 질질이다. 습지원에서 나는 촉촉한 물 냄새와 흙 속에 살고 있는 벌레들 냄새까지 맡으며 창포원을 한 바퀴 산책한다. 강아지들에게 창포원은 천국이지 싶다.

반려견과 산책하기 좋은 창포원

  <개집사들의 저녁노을 맛집> 
  창포원의 생기를 듬뿍 즐긴 후, 평화문화진지의 장벽을 통과하면, 드디어 저녁노을 맛집 다락원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왼)아날로그 감성을 깨우는 다락원 잔디광장, (오)개집사라도 혹은 개집사가 아니라도 다락원의 저녁노을 맛집을 즐겨보자 

  너무 완벽해서 다른 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공간. 도봉산의 기세가 압도적이어서 위대한 자연 앞에 인간으로서 겸손해지는 공간. 벽화의 그림마저 꿈틀거리는 것 같은 생명력이 있는 공간. 쉼 없이 돌아가는 기차바퀴 소리가 심장을 마구마구 뒤흔드는 공간. 아날로그적 감성이 살아 움직이는 공간. 이곳에서 난 오늘도 잠시 ‘은하철도 999’의 환상에 빠진다. 

  그 풍경 속에선 당신도 경이롭거나 낭만적인 환상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스름이 내릴 무렵 텀블러에 커피 한잔 담아 다락원을 향한 여정을 떠나보길 추천한다. 운동복 차림의 당신과 당신 곁을 따르는 반려견은 이미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가고 있을 테니까.

<기록 오키씨>